싱가포르항으로 향하는 말라카 해협은 언제나처럼 조용했다. 에메랄드빛 바다 위의 파도는 부드럽게 흘렀고 드넓은 수평선은 평온해 보였다. 한국 상선 에스코트호 선장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조타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타실 안에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선원들은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선장은 한가한 듯 항로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이대로라면 약 7시간 후, 오전 10시 15분, 싱가포르 입항.” 항해는 순조로웠다. 통신상태도 양호했고, 레이더에는 그 어떤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출항 이후 단 한 번도 경고음이 울린 적이 없었다. 선원들은 긴장을 풀었고, 조타실에는 약간의 나른함이 감돌았다. “다음 항차부터는 인도네시아 쪽으로 돌리는 게 낫겠어요.” 항해사가 농담 삼아 말하자 선장은 웃으며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