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군작전사령부 작전통제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에 말라카 해협 일대의 해상 교통 흐름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해군 중위 박찬혁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야간작전 근무에 배정되어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평온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민간 선박들의 궤적이 보였다. 바다 위의 질서는 GPS와 AIS 시스템이 만든 투명한 지도로 그려졌고, 지금까지 그 질서는 단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깨지는 데는 단 한 줄의 교신이면 충분했다.
“SOS... SOS... 에스코트호... 조타실 파괴... 공격... 구조요청... 위치는 북위 2도 10분, 동경 101도 30분...”
박찬혁은 귀를 의심했다. 민간 선박의 구조 요청이라면 통상 해양경찰로 연결되는 것이 순서지만, 이건 달랐다. 그 메시지는 분명 해군에게 목숨을 구해달라는 절박한 요청이었다.
“담당 해역 AIS 다시 체크, 민간 선박 에스코트호? 통신 상태?”
박찬혁이 급히 물었고, 옆에 있던 부사관도 확인을 시작했다.
“에스코트호. 말레이시아 클랑항을 출발해 싱가포르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마지막 위치 보고는 6분 전. 이후 AIS 신호 불안정. 현재는 완전히 끊겼습니다.”
작전실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평소 같았다면 엔진 결함이나 기계적 오작동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을 것이다. 그러나 ‘조타실 파괴’, ‘원인 불명’, ‘공격’이라는 단어가 나열되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잠시 후, 통제실 책임자가 들어섰다. 그는 박찬혁이 프린트한 교신 내용을 읽고 난 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명령을 내렸다.
“상황, C등급에서 A등급으로 즉시 격상한다. 해당 해역에 가장 가까운 구축함을 기동시켜라. 공군에는 위성영상 분석 요청하라. 정황상 이건 우발사고가 아니다.”
“대한민국 해군 구축함, 충무대왕함”
충무대왕함은 인도양 안다만해 인근에서 해상 훈련을 마치고 복귀 중이었다. 복귀 항로는 말라카 해협을 지나 싱가포르 해역을 통과하는 경로였다. 그때, 해군작전사령부 작전통제실로부터 긴급 구조 요청이 접수됐다. 충무대왕함은 곧바로 항로를 수정해 사고 지점까지 약 600km 거리를 최고 속력으로 항진했다. 11시간 내 도착이 가능한 거리였다.
작전장 김세양 대위는 항해실에서 레이더 영상을 점검하고 있었다. “사고 해역 10분 이내 진입 예정, 주변에 의심 선박 없음, 드론 정찰 대기중입니다.” 김 대위는 의문을 숨길 수 없었다. 만약 누군가 공격했다면, 대체 그 흔적은 어디에 있는가?
오후 2시 37분. 충무대왕함은 사고 12시간만에 에스코트호에 도착했다. 바람은 잔잔했고, 파도는 낮았다. 조용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마치 껍데기만 남은 유령선 같았다.
“접안 준비 완료. 조사팀 출동합니다.”
조사팀은 조심스럽게 선체에 접근했다. 정숙을 유지한 채 발을 디디는 순간, 마치 무언가 터질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두 시간 뒤, 조사팀이 복귀하며 긴급히 보고했다.
“조타실에서 정밀 폭발 흔적이 확인됩니다. 파편은 바깥으로 튀어나간 형태이며, 손상은 정확히 중심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기계 결함은 아닙니다.”
그때, 해군작전사령부 작전통제실로부터 위성영상 분석 결과가 도착했다. 김세양 대위는 조용히 데이터를 확인했고, 그의 심장은 찬물처럼 식었다. 영상에는 몇 초간 어떤 그림자가 포착돼 있었다. 레이더에도 감지되지 않고, 엔진음도 없었다.
“군용 스텔스 드론으로 추정됩니다. 조타실을 정조준해 접근한 것으로 보이며, 선박과의 거리는 약 30미터, 고도 20미터 상공에서 드론 3대가 총 9발의 소형 폭탄을 투하한 뒤 자폭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국방부는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보고는 청와대까지 올라갔다. 국방정보본부는 드론의 경로를 역추적했지만, 출발 지점을 특정하지 못했다. 드론은 해상에서 저고도로 이동했고, 말레이시아 해역 전역을 덮은 그 움직임엔 어떠한 국기도 식별코드도 없었다.
“그 누구도 공격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공격의 증거는 있지만, 공격자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동기가 없습니다.”
그림자 전쟁 - Tom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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